울림군(鬱林郡, 郁林郡[1])은 중국의 옛 군이다.
전한
전한이 최초로 설치하였다.
교지자사부에 속했다.[2] 작은 시내·내·강이 7개 있어 함께 3,110리를 간다. 원시 2년(2년)의 인구조사에 따르면 12,415호, 71,162명이 있었다. 아래의 속현 목록은 《한서》지리지의 내용이다.[3][2] 원연·수화 연간(기원전 8년 무렵)의 현황으로 여겨지며, 총 12현이다. 치소는 포산현이다.
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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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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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적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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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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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산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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布山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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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이강 시 구이핑 시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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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광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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安廣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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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닝시 헝 현 북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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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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阿林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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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이강 시 구이핑 시 남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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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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廣鬱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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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써 시 톈린 현·러예 현·첸시난 부이족 먀오족 자치주 처헝 현 교차 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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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수(鬱水)가 야랑의 돈수(豚水)에서 갈려나와서 동으로 사회현에 이르러 바다로 들어가니, 장가·울림·창오·남해 4군을 지나 4030리를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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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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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留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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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빈 시 우쉬안 현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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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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桂林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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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빈 시 샹저우 현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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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중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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潭中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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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저우 시 남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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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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臨塵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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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쭤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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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애수(朱涯水)가 영방현으로 들어간다. 또 근남수(斤南水)가 있다. 또 침리수(侵離水)가 있어 700리를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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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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定周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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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츠 시 이저우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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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수(周水)가 무렴(無斂)에서 갈려나와서 동으로 담수(潭水)로 들어가니, 790리를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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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식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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增食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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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닝 시 룽안 현 동 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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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수(歡水)가 장가의 동쪽 경계에서 갈려나와서 주애수로 들어가니, 570리를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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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방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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領方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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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닝 시 빈양 현 남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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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남수가 울수로 들어간다. 또 각수(墧水)가 있다. 도위의 치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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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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雍鷄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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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쭤 시 룽저우 현 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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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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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나라
양나라에서 정주(定州)를 설치했다가 남정주(南定州)로 이름을 바꾸었다. 수나라가 남진을 멸한 후 윤주(尹州)로 통폐합하였다. 대업 초에 울주(鬱州)로 개명하였다가 이내 군제가 부활하여 울림군으로 고쳤다. 당나라 때 군제와 함께 완전히 폐지되었다. 12현 59,200호를 관할하였다.[4] 지금의 광시 좡족 자치구 구이강 시, 난닝시 일대이다.
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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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적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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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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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림(鬱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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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이강 시 위장 강 남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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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평현(武平縣), 용산현(龍山縣), 회택현(懷澤縣), 포산현(布山縣)을 합쳐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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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평(鬱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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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이강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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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방(領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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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닝 시 빈양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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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나라의 영방군 소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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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림(阿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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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이강 시 구이핑 시 남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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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남(石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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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린 시 싱예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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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나라의 석남군 소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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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평(桂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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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이강 시 구이핑 시 북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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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나라의 계평군 소속이었다. 대업 초에 황화현(皇化縣)을 합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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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馬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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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이강 시 탄탕 구 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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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安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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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닝 시 빈양 현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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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나라의 안성군 소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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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포(寧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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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닝 시 헝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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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나라의 영포군 소속이었다. 간양군(簡陽郡)도 있었는데 진 정복 후 간주(簡州)로 통폐합했다가 598년(개황 18년) 연주(緣州)로 개명하였다. 606년 울주와 병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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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산(樂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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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닝 시 헝 현 북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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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나라의 악양군(樂陽郡) 소속이었다. 598년 약양이라 부르던 것을 개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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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嶺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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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포현과 선화현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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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나라의 영산군 소속이었다. 진 정복 후 영현(嶺縣)으로 고쳐 부르다가 598년 다시 영산으로 개명하였다. 대업 초에 무연현(武緣縣)을 합쳤다. 무연산(武緣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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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화(宣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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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닝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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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진흥군(晉興郡)에 속하였다. 598년 진흥이라 부르던 것을 개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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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 ↑ 郁은 鬱의 통자로도 쓰인다.
- ↑ 가 나 周振鹤 (2006년 6월). 《汉书地理志汇释》. 合肥市回龙桥路1号: 安徽教育出版社. 429 - 432쪽. ISBN 7-5336-4757-2.
- ↑ 반고: 《한서》 권28 지리지 제8 하
- ↑ 《수서》31권 지 제26 지리下 양주 울림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