뮌헨 필하모니 지휘 (1926), 킬 지휘자, 만하임 지휘자, 뒤스부르크 음악 감독, 베를린 라디오 교향악단 상임 지휘자, 함부르크 국립 오페라 및 함부르크 필하모닉 음악감독, 바이에른 라디오 교향악단 지휘, 로열 콘서트허바우 오케스트라 제1지휘자 및 공동 상임 지휘자,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및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객원 지휘,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명예 지휘자
그 후 만하임으로 옮겨 푸르트뱅글러에게 격찬을 받았다. 당시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에서 12개의 연주회를 부탁받았지만 그의 레파토리와 지휘 경력이 부족하다며 스스로 사양했다 (1958년까지 미국에는 가지 않았다). 그 후 뒤스부르크(Duisburg)에서 1930년부터 1932년까지 음악 감독으로 있었다. 1932년 베를린 라디오 교향악단의 상임 지휘자가 되었으며, 도이체 오퍼에서 베를린 필하모니커와 16 연주 시즌을 지휘했다.
1934년 칼 뵘을 이어 함부르크 국립 오페라와 함부르크 필하모닉의 음악감독이 되었다. 그의 회고에 의하면 나치 시절 함부르크는 '충분히 리버럴'하여 나치에 가입하지 않고도 음악감독직을 유지할 수 있었다. 또한 그 당시 나치에 의해 금지된 힌데미트나 버르토크와 같은 작곡가의 곡을 지휘할 수 있었다. 거기에서 1949년까지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1949년까지 바이에른 라디오 교향악단에 있었다.
로얄 콘서트허바우 오케스트라에 정기적으로 객원 지휘를 했으며, 1941년부터 43년까지, 당시 상임 지휘자인 빌렘 멩겔베르크 체제에서, 제1지휘자(eerste dirigent)를 역임했다. 1961년부터 63년까지는 베르나르트 하이팅크와 함께 공동 상임 지휘자(joint chief conductor)를 지냈다. 당시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LSO)에서도 단골 객원 지휘를 했다. 1975년에 LSO는 그를 명예 지휘자로 위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