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산학교에서 교육자로 지내다가 북간도로 망명하여 이동녕, 이상설 등과 서전서숙을 세웠다. 헤이그 특사였던 이준에게 이상설을 만나게 해주었다.1913년 신흥학교의 교장으로 독립군 양상에 힘을썼다. 남만주교포 이름으로 만국평화회의에 한국독립청원서를 제출하였으며, 당시 서간도의 한족회의 간부로 활동하는 한편 서로군정서를 설립, 부독판으로 서간도 지방의 모든 독립운동을 통제하는데 주도하였다. 1919년 무오독립선언서에 서명하였다. 1920년 임시정부 간서총판부 총판과 1921년 재만학생교과서편찬위원회의 위원장이 되었다. 1930년에는 한국독립당을 재결성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