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돈은 기원전 5세기의 마지막에 엘리스에서 태어났다. 기원전 401년부터 기원전 400년, 엘리스와 스파르타의 전쟁으로, 파이돈은 포로가 되었다. 아테네에서 소년애의 매춘숙의 노예 (남창)가 되어, 그 미모는 평판이 되었다. 그리고 소크라테스의 제자가 되어, 소크라테스의 눈에 띄어 그에게 신청 되어 자유의 몸으로 해 주었다. 테이바이의 케베스나 플라톤과는 친구였던 것 같고, 플라톤의 대화편 '파이돈'에 그 이름을 남기고 있다 (아이스키네스에도 동명의 대화편이 있다). 그러나, 아테나이오스는 플라톤의 파이돈관의 정확성을 부정해, 플라톤과 파이돈의 관계는 우정은 아니었다고 말하고 있다.
파이돈의 교의는 모르고, 플라톤의 '파이돈'으로부터 추측하는 것도 할 수 없다. 저작은 현존하고 있지 않지만 대화편의 형식이었던 것 같다. 파나이티오스는 '조퓨로스 (Ζώπυρος)'와 '시몬 (Σίμων)'은 진짜 작품이지만, 그 이외에 대해서는 의심하고 있었다고 한다[1]. 세네카는 '덕을 얻는 유일한 방법은 좋은 사람들의 사회에 틀어박혀 있는 것이다'라는 파이돈의 격언을 남기고 있다[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