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군주 프란체스코 2세는 아들이 없었기 때문에, 그 동생인 카세르타 공작 알폰소(1841년~1934년)가 당주를 계승했고 그 장남 칼라브리아 공작 페르디난도 피오(1869년~1960년)로 이어진다. 그러나 후계자가 요절했던 페르디난도 피오의 사후(死後) 가계는 분열되었다. 카세르타 공작 알폰소의 차남 카를로(1870년~1949년)가 아스투리아스의 공주 메르세데스(알폰소 13세의 누나로 당시 알폰소 13세는 미혼이라 메르세데스가 왕위 계승 서열 1위였다)와 결혼하기 위해 1900년12월 14일 양시칠리아 왕위 계승권을 포기하였는데, 1960년 칼라브리아 공작 페르디난도 피오가 사망하여 당시 생존해 있던 최고령 형제인 5남 라니에리가 당주 자리를 계승하자, 카를로의 아들 알폰소가 60년 만에 양시칠리아 왕위 계승권을 다시 주장하고 나섰다. 두 계통 사이의 분쟁은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대부분의 유럽 왕실들은 라니에리의 후손(카스트로 계열)을 양시칠리아 당주로 인정하지만, 스페인 왕실은 카를로의 후손(칼라브리아 계열)을 양시칠리아 당주로 인정한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