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0년 스페인군은 알제 앞바다의 작은 섬인 페뇬섬에 거점을 두고 지역 통치자인 살림 알투미에게 주둔을 승인할 것과 조공을 바칠 것을 명시한 강제조약을 체결하였다.[1][2] 이후 페뇬섬에는 200명의 수비대가 주둔하는 요새가 건설되었는데 스페인어로 엘 페뇬 데 아르헬 요새라 불렀다.[2] 살림 알투미는 스페인으로 가서 페란도 2세를 알현하여 순종할 것을 직접 맹세해야 했다.[2]
1516년 알제의 아미르가 된 살림 알투미는 스페인군을 몰아내기 위해 오스만 출신 해적 형제 오루츠와 바르바로스 하이레딘을 불러들였다. 오스만군을 이끌고 온 오루츠는 되려 살림 아투미가 스페인군과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판단하며[1] 살림을 암살하고 마을을 점령하였다.[3] 이후 스페인은 1516년 돈 디에고 데 베라 장군의 원정대를, 1519년 돈 우고 데 몽카다 장군의 원정대를 파견하여 알제 시를 점령하고자 하였으나 두 차례 모두 실패로 끝났다.[2]
1518년 틀렘센 함락 당시 오루츠 장군이 사망하자 바르바로스 하이레딘은 그의 뒤를 이었다. 그러나 앞서 바르바로스가 알제를 점령할 수 있었던 것은 오스만 제국의 술탄셀림 1세가 지원해준 덕이었는데 1520년 술탄이 세상을 떠나면서 군사적 지원을 받을 수 없게 되었고, 이로 인해 바르바로스는 1524년 현지 카빌인 세력의 공격에서 패퇴하여 알제 시를 포기,[2] 본인의 영지인 지젤리로 후퇴하게 되었다.[4]
재정복
1529년 1월 황제 페르디난트 1세에게 전쟁을 선포한 쉴레이만 대제는 서부 지중해에서 공세를 펼치기로 마음먹고, 바르바로스에 대한 국가 차원의 군사지원을 재개하게 되었다.[5]
예니체리 병력 2,000명과 포병, 군자금 등을 나라에서 지원받은 바르바로스는[4] 본격적인 공세에 앞서 알제의 셰이크를 모시던 자들에게 뇌물을 뿌려 변심하게 만들었다.[4] 알제의 민심을 얻은 바르바로스는 페뇬섬의 스페인군 요새를 포위하기 시작하였다.[4]
당시 페뇬 요새에는 돈 마르틴 데 바르가스의 스페인군이 주둔하고 있었는데 본국의 지원 없이 22일 동안 포격을 견뎌내었다. 전투 과정에서 바르가스는 곤봉에 맞아 전사하였고, 25명의 스페인 병사가 끝까지 저항하였으나, 결국 1529년 5월 29일 항복을 선언하였다.[2][4] 이후 페뇬 요새는 해체되었으며, 해체하면서 나온 돌무더기는 기독교도 노예를 부려 알제 앞바다에 방파제를 쌓는 데 활용되었다.[2][4]
여파
페뇬 요새를 함락시킨 바르바로스는 알제를 주기지로 삼아 이후 수년간 바르바리 연안의 습격에 나섰다.[6] 1541년에는 신성로마제국의 합스부르크가 황제 카를 5세가 알제를 탈환하기 위해 원정에 나섰으나 실패로 끝났다.[2] 그 후로 알제는 300년 동안 오스만 제국의 지배하에 있다가 1830년 프랑스의 침공으로 프랑스 영토가 되었다.[1]
각주
↑ 가나다International Dictionary of Historic Places: Middle East and Africa Trudy Ring p. 54
↑ 가나다라마바사아E.J. Brill's first encyclopaedia of Islam, 1913–1936 by Martijn Theodoor Houtsma p. 2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