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宋影, 일본식 이름: 山川實야마카와 마코토, 1903년5월 24일 ~ 1977년1월 3일[1])은 일제강점기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연극인으로, 한성부 출신이다. 송동양(宋東兩), 은구산(殷龜山), 관악산인(冠岳山人), 수양산인(首陽山人), 앵봉산인(鶯峰山人) 등의 필명을 썼으며 본명은 송무현(宋武鉉)이다.
생애
배재고등보통학교에서 수학했으며 오랜 동지인 박세영과는 배재고보 동기였다. 1922년 조직된 한국 최초의 사회주의 연극단체 염군사에 가담하였고, 이후 대표적인 카프 계열의 연극인으로 꾸준히 활동했다. 1925년 〈늘어가는 무리〉로 등단하여 〈석공조합대표〉, 〈호신술〉 등 노동자의 변혁 운동을 묘사하거나 유산계급의 허위성을 풍자하는 이념적 성격의 작품들을 발표했다.
광복 후 조선연극건설본부를 결성해 위원장을 지내는 등 다시 좌익 계열로 돌아갔고, 곧 월북하여 북조선연극동맹 위원장으로 활발히 활동했다. 한국 전쟁 때는 조선인민군에서 종군 작가로 참전하기도 했다.
특히 1956년 발표한 〈백두산은 어데서나 보인다〉는 5대 혁명가극의 하나인 〈밀림아 이야기하라〉로 각색되어 크게 성공했다. 송영은 김일성의 항일 무장 투쟁을 직접 현장에서 조사하고 문학적으로 형상화해 보급함으로써, 김일성 계열의 권력이 항일 투쟁의 역사로 뒷받침되어 굳어지는 과정을 측면에서 지원했다.[4]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여러 요직을 거치면서 정치적으로 성공할 수 있었다.
한설야 계열로 분류되는 송영은 1960년대 한설야가 몰락할 무렵 숙청당했다는 설이 있다. 그러나 현재는 애국렬사릉에 유해가 묻혀 있어 숙청설이 사실이더라도 이미 복권된 것으로 보고 있다.[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