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반트 백국은 로타링기아 공국 내의 봉건적 영지로서 성립되어 959년 로타링기아의 분할 후 하로타링기아(Lower Lotharingia) 내에 포함되었다. 이로 인해 이 땅은 중부 프랑크 왕국과 신성 로마 제국을 구성하는 일부가 되었다. 1085년부터 1086년경 정확히는 선대 브라반트 변경백, 로타링기아 팔라틴 백작 에르만 2세(Count Palatine Herman II of Lotharingia)의 사후, 이 영지는 루뱅 백작 앙리 3세(Henry III of Leuven)에게 할양되었다.
브라반트 공국이 공식으로 성립된 것은 1183년부터 1184년이었다. 브라반트 공작의 세습칭호는 신성로마 황제 프리드리히 1세가 브라반트 공작 앙리 1세(Henry I of Brabant)(하 로타링기아 공작 고드프루아 3세 드 루벤(Godfrey III of Leuven, Duke of Lower Lotharingia)의 아들)를 위해 세워졌다. 브라반트 공국에 해당되는 나라는 아주 작았지만, 덴드르 강과 젠 강 사이의 영토로 한정됐음에도 불구하고, 브뤼셀의 서쪽에 위치하고, 이 나라의 이름은 13세기 이후 공작의 관리하에 있던 나라 전체에 적용되었다.
1190년 고드프루아 3세 사후 앙리 1세가 하 로타링기아 공작이 되었다(사실상 영토에 대한 권력이 없는 공작위). 의정서에 의하면 그의 자손 전원은 그 결과 브라반트 공작 및 하 로타링기아 공작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흔히 로티에르 공작(Duke of Lothier)으로 부른다.
1288년 보린겐 전투(Battle of Worringen) 후, 브라반트 공작은 림뷔르흐 공국(duchy of Limburg)과 오톨무즈(Overmaas; 당시 리에주 사교령의 일부)를 얻었다. 1354년 자유 특권(Blijde Inkomst)이 브라반트 공작 장 3세(John III, Duke of Brabant)에 의해 브라반트 여러 도시의 시민에게 내려졌다. 1430년 하 로타링기아, 브라반트, 림뷔르흐 의 각 공작령은 부르고뉴의 선량공 필리프에게 계승되었다. 1477년 이 칭호는 부르고뉴 여공 마리 드 부르고뉴가 합스부르크 가문의 막시밀리안의 결혼의 지참금으로 가져 갔기에 합스부르크 가문의 세습이 되었다. 브라반트의 그 후 역사는 저지대 여러 나라 또는 네덜란드 17주 역사의 일부가 되었다.
80년 전쟁(1568년-1648년)에서 북부주(현재 노르트브라반트주)는 네덜란드군 관리하에 들어갔다.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 후, 네덜란드 공화국의 독립이 비준되어 북 브라반트는 공식으로 연방정부가 다스리는 영토로써 양도되었다.
남쪽은 남부 네덜란드로써 스페인, 합스부르크 가문의 지배하에 남았다. 1714년 지배권이 합스부르크 가문의 별개 계통인 오스트리아-합스부르크 가문으로 이관되었다. 1795년남부 네덜란드가 프랑스 혁명군에게 점령되면서 브라반트 공국은 소멸되었다. 예전 영토는 되네세스(Deux-Nèthes, 프랑스 제1제정의 지방행정구획의 한곳. 현재 안트베르펜주), 딜(Dyle, 프랑스 제1제정 시대의 지방행정구획. 후에 브라반트주)로 재편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