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첫 번째 부인은 류리크 왕조키예프 대공국의 스뱌토폴크 2세의 딸 즈비슬라바(1085/90 - 1114[1])였다. 1103년 맺어진 것으로 추정[2]되는 이 결혼은 키예프로부터 군사적 지원을 얻기 위해서였다. 즈비슬라바의 죽음 전까지 폴란드와 갈리치아-볼히니아 왕국은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다.[3] 즈비슬라바와 사이에는 한 명의 아들과 한 명의 딸이 있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또한 일부 기록에 따르면 한 명의 아들이 더 있는 것으로 추정되지만 정확하지는 않다.[4][5]
볼레스와프 프리오우트가 죽기 전에 부친의 (볼레스와프 3세 크시보우스티의 유언)를 발행했는데, 그 내용은 자신의 영토를 네 명의 아들이 나누어 상속 받으라는 것이었다. 유언에서 성립된 "상위 법규"는 이렇게 규정하고 있었다. 왕조의 상속자들중 가장 손윗 사람이 나머지 지역 모두를 통치하는 최상의 권력을 지니고 더 이상 분할 할 수 없는 "상급 영토"인 폴란드의 남-북에서 중부까지 이르는 크라쿠프도 포함한 방대한 영토의 통제권 또한 지닌다. 그 고위의 특권은 신성 로마 제국의 봉토인 포메라니아 전역의 통제권을 포함한다. "상위 법규"는 볼레스와프가 죽고 얼마 못가 휴지 조각이 되었고, 거의 200년간의 봉건 분열 기간에 접어들게 했다.
↑K. Jasiński: Rodowód Piastów śląskich, cap. I, pp. 57-58.
↑Latopis hipacki에 따르면, 이름이 주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고문헌에서 그녀의 이름을 유디트로 표현했다. J. Żylińska의 Piastówny i żony Piastów. pp. 99, 113. M. Spórna and P. Wierzbicki. 그러나 일부 문헌에서는 존재는 나타나지만 이름은 알려지지 않는다. M. Spórna and P. Wierzbicki: Słownik władców Polski i pretendentów do tronu polskiego, pp. 501-502.
↑Полное собранiе русскихъ лѣтописей, vol. 2: Ипатiевская лѣтопись, p. 10.
↑O. Balzer indicates that marriage of Bolesław and Salomea was concluded in 1113. O. Balzer: Genealogia Piastów, pp. 122-123. K. Maleczyński, however, believes that this marriage took place in late March–July 1115. K. Maleczyński: Bolesław III Krzywousty, p. 313. K. Jasiński was in favor of J. Bieniak, who indicates that the marriage occurred in the first two months of 1115. K. Jasiński: Rodowód pierwszych Piastów, pp. 190-1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