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페즈는 1925년 8월 23일 플로리다주탬파에서 태어났고, 이보 시티 근교에서 자랐다.[1][2] 같은 이름을 가진 그의 아버지는 젊은 시절 스페인의 아스투리아스 지역에서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3] 로페즈는 어린 시절 재학한 힐스버러 고등학교에서 농구 선수로 활동했고, 학교의 학군 장교 후보생 예비 과정 프로그램에서 연대장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다.[1][2] 1943년 7월 8일 미국 해군에 입대, 그 직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다음 해 6월 11일까지 복무하였다.[1]
2차 세계 대전 중반에 그는 미국 해군사관학교에 선발되었다. 전쟁이 진행 중이었기 때문에 동급생들과 함께 3년 속성 과정을 거쳤으며,[2] 1947년 6월 6일 학교를 졸업하고 해병대 소위로 임관하여 버지니아주콴티코의 기초반에 입교하였고, 그 후 소대장반 훈련 연대에서 소대장이 되었다.[1]
1948년, 로페즈는 중국으로 파견하여 박격포 포반장을 수행하였고, 이후 칭다오와 상하이에서 소총 소대장으로 복무하였다. 중국에서 복귀한 후에는 캘리포니아주펜들턴 기지에 배치되었다. 배치를 받은 후 얼마 되지 않아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그는 군인의 본분을 이유로 보병 장교로 한국 파병에 지원하였다. 1950년 6월 16일에 중위로 진급하였다.[1]
한국 전쟁 - 명예 훈장의 무공
로페즈는 한국에서 미 제1해병사단 5연대 1대대 A중대 소대장으로 복무하였으며, 1950년 9월 15일, 인천 상륙 작전에 투입되었다.[4] 연안에 상륙한 후 그가 부대원을 이끌며 방벽을 넘는 모습을 찍은 사진은 이 작전의 상징으로 남게 되었다.[2] 그는 벽을 넘어간 후 돌진하여 북한군 벙커에 수류탄 투척을 준비하였으나 적의 자동화기 사격으로 가슴과 오른쪽 어깨에 피격을 당하였고, 이 때문에 핀이 빠진 수류탄을 떨어트리게 되었다. 그는 부상에도 불구하고 수류탄 쪽으로 기어갔고, 부상 때문에 멀리 던질 수 없자 다른 소대원이 피폭 당하지 않도록 수류탄을 몸 아래로 끌어 안았다.[4] 그는 수류탄이 폭발하면서 사망하였고, 명예 훈장을 추서 받았다. 해군 장관 댄 A. 킴벌은 1951년 8월 30일 워싱턴 D.C 수여식에서 로페즈의 아버지에게 훈장을 수여하였다.[1]
그의 사망 소식은 전선의 해병 사이에서 빠르게 퍼져갔다. 스크립스 하워드 종군 기자 제리 소프는 그의 죽음을 다룬 기사에서 "용기 있는 죽음은 인간을 위대하게 만든다"는 말을 남겼다.[1]
↑United States Marine Corps History Division (2007). “U.S. Marines in the Korean War”. United States Government Printing Office. 111면. 2010년 6월 23일에 확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