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근(朴智根, 일본식 이름: 松山淸마쓰야마 기요, 1890년 10월 14일 ~ 1962년 6월 26일)은 일제강점기의 기업인으로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도 지냈다.
생애
전라북도 익산군 출신으로 일제 강점기 초기에 잠시 관리로 일했다. 1912년에 조선총독부 임시토지조사국 기수로 근무하다가 1916년에는 고향 익산으로 전근했고, 이듬해 퇴직한 뒤 실업인으로 활동했다.
1933년에 전라북도 도회의원으로 추대되었고, 전북축산회사 지배인, 소득세 조사위원, 소작조사위원, 면협의회원, 군농회 의원, 금융조합 감사 등 지역 유지들이 맡는 여러 직책을 역임했다. 실업인으로서는 양조장을 운영하면서 양조업과 채석업 분야에서 활동했다.
1935년 총독부가 편찬한 《조선공로자명감》에 조선인 공로자 353명 중 한 명으로 수록되어 있다.[1][2] 이 책자에는 박지근의 직업이 양조업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재빠른 일처리와 위엄 있는 응접", "비범한 머리"를 갖춘 인물로 평가하고 "실업을 천대하는 지방의 악습을 타파"했다고 적혀 있다.
일제 강점기 말기에는 조선임전보국단에 가담[3] 하였고, 중추원 참의로도 발탁되었다.
사후
2002년 발표된 친일파 708인 명단과 2008년 공개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의 중추원 부문에 모두 포함되었으며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도 포함되었다.
2남 5녀 중 막내딸이 성악가이자 서울대학교 음대 교수 박노경이다. 박지근이 운영하던 황등주조장은 장남이 물려받아 경영하다가 1960년대 후반에 이종화에게 넘어갔다.[4]
같이 보기
참고자료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