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구치현히카리시 출신으로 1931년 3월 도쿄 제국대학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그 해 5월 일본공산당에 공식 입당했다. 겐지는 1933년 일본 군경에 의해 체포되어 경찰관들을 죽이자고 선동한 혐의로 구속됐지만 그는 이를 부인했다. 이후 유죄 판결을 받아 종신형을 선고받지만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일본이 항복한 후 석방됐다. 이후 다시 정계에 뛰어들어 1949년의 선거에서 일본공산당을 이끌었으며 이로 인해 일본공산당은 35석을 차지하게 된다. 하지만 더글러스 맥아더는 겐지와 23명의 다른 일본공산당 고위직 인사들이 정계에 진출하는 것을 금지시켰다.
1958년 일본공산당의 당수가 된다. 그 해 겐지는 공식적으로 일본에서의 폭력 공산 혁명을 요구하던 과거의 노선을 포기하고 겐지와 일본공산당은 온건노선을 취하기 시작했다. 미야모토 겐지 하에서의 일본공산당은 주거 문제, 인플레이션, 그리고 교육 문제 등을 이슈로 제기하기 시작했다. 이 와중에 겐지는 무산계급독재의 노선 대신 민주주의와 자유를 옹호하는 노선을 취하며 1982년까지 당수를 지냈다. 현재의 일본공산당 또한 이 노선을 따른다. 일본공산당 당수로서의 활동 이외에도 그는 정치에 대한 독자적 노선과 시선으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