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부안(말레이어: Labuan)은 말레이시아 연방 정부의 영토에 있는 주요 섬이다. 라부안은 역외금융센터와 주변의 브루나이 국민들과 스쿠버 다이버들의 관광지로도 잘 알려져 있다. 라부안이라는 명칭은 말레이어로 "정박지"를 뜻하는 단어인 '라부한'(labuhan)에서 유래됐다.
지리
라부안의 영토는 75 km2의 라부안섬과, 총 면적 92 km2의 6개 작은 다른섬들(Pulau Burung, Pulau Daat, Pulau Kuraman, Pulau Papan, Pulau Rusukan Kecil, and Pulau Rusukan Besar)로 이루어져있다. 보르네오섬의 해안선으로부터 8km 떨어진 곳에 위치해, 말레이시아의 사바주와 남중국해를 향해 있는 브루나이 만 북쪽 끝의 브루나이와 가깝다. 라부안섬은 주로 평평하고 굴곡이 심하지 않으며 제일 높은 곳은 85m밖에 되지 않는다. 아직 영토의 70%가 초목이다. 빅토리아라고 알려진 반다르라부안이 이 지역 주요 도시이자 항구이며 부르나이만을 향한다.
기후
Labuan (Labuan Airport) 1961–1990, extremes 1930–present의 기후
1840년 영국이 아무도 살지않았던 이 섬을 해적 퇴치를 위한 기지로 남았다가 나중에 싱가포르와 홍콩 사이의 해저 케이블 용도로 사용했다. 1846년 브루나이의 술탄이 영국에게 이 섬을 할양하고, 1848년 영국 국왕의 직할 식민지가 되었다. 1890년 1월 이곳은 북보르네오의 영토가 되었다가, 1906년 10월 30일 영국령 동남아시아 해협 식민지가 되었다. 제임스 브루크가 이 사라와크 왕국의 첫 번째 총사령관이자 통치자가 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동안은 일본의 북보르네오 제37사단으로 1941년 12월부터 1945년 6월까지 지배당했다. 라부안은 일본의 북보르네오 첫 번째 사령관-후작 토시나리 마에다의 통치이후 마이다섬(Pulau Maida, 前田島 [Maeda-shima])으로 재명명되었다. 이 섬은 다시 오스트레일리아의 오보에6작전으로 1945년 6월 편입되었다. 라부안은 1946년 7월 다른 영국령 동남아시아 해협 식민지와 같이 영국식 이름을 채택하고, 1946년 7월 15일 영국령의 북보르네오로 편입되었다. 바꿔서 말해, 1963년 말레이시아 사바주의 한 부분이 되었다는 의미이다.
1984년 4월 16일 라부안은 사바 주로부터 연방 정부로 양도되었고, 말레이시아의 연방 직할구가 되었다. 1990년 이곳은 역외금융센터이자 자유무역지대가 되었다.
방위
이곳 방위는 해군순찰함, 파병대, 공군 등이 섬에 파견되어 연방정부하에 있다. 지방 경찰대는 매일 법과 명령을 내린다. 연안경비대와 간접세무국은 라부안에서 비교적 강한 역할을 한다. 왜냐하면 이곳이 연방직할령으로 역외금융센터이자 자유무역지대이기 때문이다.
인구
2000년, 이곳의 민족 구성은 말레이/부미푸트라로 브루나이 말레이인/크다얀(60,549명, 77.92%), 중국계(12,019명, 15.47%), 인도계(989명, 1.28%), 그 외(4,143명, 5.33%)로 이루어져 있다.
인기 관광지
라부안에는 여러 종류의 볼거리와 관광지가 많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여러 종류의 전쟁 무덤들과 기념비들이 존재한다. 이곳에서 영국, 호주, 인도, 사라왁주, 브루나이, 북보르네오, 제국군대 등의 무덤을 포함한다. 1945년 일본이 오스트레일리아에 항복을 선언한 것을 기념하는 비석도 있다. 또한 라부안 지역 랜드마크로도 잘 알려진 굴뚝을 포함한 영국 해군의 석탄항구도 잔존해있다. 라부안 해양 박물관도 있다.
라부안에는 또한 다이버들에게 인기가 많은 4대 난파선 베이스가 위치해있다: 시멘트 난파선과 아메리칸 난파선, 오스트레일리아 난파선, 블루워터 난파선이다.
라부안에는 많은 학교가있다. 어쨌든 국제학교로는 라부안 국제학교가 전부이다. 다른 인기장소로는 라부안 국제 해양스포츠 콤플렉스가 있다. 2008년부터 2년동안 새롭게 추진될 곳으로는 마리나 센터와 라부안 스퀘어 프로젝트가 있다.
라부안은 또한 고등교육의 말레이시아 사바 라부안 국제 대학 캠퍼스가 위치해 있고, 스팡가르만과 사바의 코타키나발루에도 사바대학교의 분관이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