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獨立運動, national liberation movement) 또는 해방운동(解放運動)은 어떤 국가 또는 세력의 직·간접적인 지배를 받는 지역에서 자치권 등의 권한을 얻거나, 스스로의 국가 또는 세력을 세우기 위해 벌이는 모든 행위를 말한다. 그러므로 국가의 독립은 기존 국가에 속한 일부 지역이나 타국의 지배하에 있던 영역이, 그 지배를 벗어나 새로운 국가로 성립하는 것을 의미한다.
국제법에서는 국가의 요건으로서 일정한 영역, 국민 및 주권이 필요하다. 주권이란 그 영역을 배타적으로 지배하는 권력으로 이른바 통치 능력이다. 다만, 독립을 주장하는 지역이 국가로서의 실체를 갖추었는지 판단하는 것은 다른 국가에 맡겨져 있어 각 국가는 그 지역을 새로운 국가로서 인정하는지 여부, 즉 국가 승인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그 때문에, 비록 어떤 지역이 독립을 주장하더라도, 국가에 따라서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있어 모호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1]
정의
독립권(獨立權)을 주장(主張)ㆍ쟁취(爭取)하려는 정치적(政治的) 운동(運動)으로 지역 혹은 나라마다 처한 환경과 세계적인 정세에 따라 표방하는 의미가 다르다. 크게 언론·계몽운동과 같은 평화적인 방법과 무장 독립운동과 같은 공격적 방법으로 나뉘는데, 무장 독립운동은 관점에 따라서는 테러리즘으로 해석될 여지도 있다.
한국의 경우 1919년1월 미국대통령 윌슨이 제1차 세계대전의 강화 기초조건으로 발표한 14개조 중의 ‘민족자결’ 조항은 한국인에게 독립의 가능성을 믿게 하였고, 이것은 3·1운동이라는 민족항쟁을 폭발시킨 정신적 동기가 되었다. 3·1운동이 일어나자 미국신문들은 이 사실을 보도하면서 일본을 규탄하였고, 미국 의회에서도 같은 해 6월 30일 한국문제가 제기되어 3년간이나 논란의 대상이 되었으며, 한국에 관한 여러 보고서·성명 등이 미국의회의 속기록에 오르게 되었다.
한편 해방운동은 압박을 당하는 상태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운동으로 민족은 그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여야 한다는 민족자결(民族自決)의 이념이 바탕이 되어 식민지 지배를 받고 있는 지역에서 민족의 자유와 독립을 요구하여 전개되는 운동으로 발전되었다. 하지만 자칫 단순한 해방운동으로 표현할 때에는 지역적인 독립뿐만 아니라 사회 신분에서의 해방, 예컨대 노예 제도 폐지 운동을 가리킬 수 있다.
한국은 대한제국이던 1910년에 강제병합으로 일본에 강제점령 당한 이후 일본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한 독립운동을 국내외에서 활발하게 전개하였다.
대표적으로 국내에서 유관순 열사와 3ㆍ1운동의 시발점인 아우내 장터에서 시위를 한 사람들과
국외에 있었다가 국내로 온 의사들이 있다.
영국 본국의 가혹한 지배와 중상주의 정책에 반항하여 미국 13주(州) 식민지가 협력하여 독립을 달성한 전쟁과 식민지 내부의 사회개혁을 포함한 혁명으로 1775년에 시작된 미국의 독립혁명은 약 1세기 반에 걸쳐 식민지인들이 확립한 자치에 대하여 본국 정부가 이것을 침범하려고 시도한 데서 일어나게 되었다.
16~17세기경부터 서구 열강이 말레이시아를 지배하기 시작했으며, 제2차 세계대전 때 약 3년간 일본이 말라야를 지배했다. 당시 말라야 주민들의 독립 투쟁이 이어졌으며, 일부는 MPAJA나 PKM 등 무장조직을 결성해 전쟁을 일으키기도 했다. 1945년 일본의 항복과 함께 말라야는 독립했으나, 다시 영국으로 넘어가면서 독립운동이 거세졌다. 1957년 8월 31일 말라야는 공식적으로 독립했다.
한편 1963년 9월 16일 싱가포르, 사라왁, 사바를 합병하여 현재의 말레이시아가 결성되었는데, 1965년 싱가포르가 탈퇴한 이후 사라왁, 사바 두 지역에 대한 독립문제가 떠올랐다. 사바의 주지사였던 툰 푸아드 스테픈스는 "우리는 싱가포르 때문에 말레이시아에 가입했는데, 그들이 나갔으므로, 우리가 더 이상 말레이시아의 일원으로 있을 이유가 없다"며 독립을 주장한 바 있다. 이후 두 주에서는 말레이시아로부터 독립하려는 운동이 시작되었다. 비록 규모는 작지만, 조금씩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