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린인터넷고등학교 시절에는 잘 던지기는 했지만 임팩트는 약한 투수였다. 결국 유급까지 했지만, 프로 지명을 받는 데 실패했고 경성대학교에 진학한 후 팀의 에이스로 급부상했다. 당시 경희대학교에 재학 중이던 박현준과 함께 대학 야구의 사이드암 양대산맥으로 활약하며 2008 드래프트에서 2라운드에 지명되었지만 부상으로 인해 데뷔 연도는 2009년으로 연기됐다.
2008년에 2차 2라운드(전체 13위) 지명을 받아 입단하였다. 2008년에는 큰 활약이 없다가 본격적으로 1군에서 뛰기 시작한 2009년부터 막강 불펜으로 자리잡았다. 2010년에도 활약을 기대하였고 투구 이닝과 경기 출장수는 증가했으나 실점이 많아 2009년보다 평균자책점이 많이 증가하고 피홈런, 안타 개수도 많이 증가하여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좋은 투구 내용과 사이드암 투수라는 점에서 광저우 아시안 게임 국가대표팀에 최종 선발되어 금메달을 획득했고 병역을 해결했다. 2012년KIA 타이거즈외야수나지완을 비방하는 글을 페이스북에 써서 논란이 되어 2군으로 내려갔다가[1] 후반기에 다시 1군에 올라왔다.[2] 하지만 그 해 부진했고, 민병헌이 경찰 야구단에서 갓 제대하자마자 정수빈의 부상으로 1군에 등록되어 보호선수 등록 해당자가 늘어나자 시즌 후 보호선수 명단에서 제외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