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창궁주 유씨(慶昌宮主 柳氏, 생몰년 미상)는 고려의 왕비이며 원종의 제2비이다.
생애
아버지는 종실 신안공(新安公) 왕전(王佺)으로, 인종의 셋째 딸인 창락궁주의 증손자이다. 어머니는 희종의 넷째 딸인 가순궁주이며 창락궁주의 증손녀이다. 부모는 서로 6촌지간이며, 고려 시대 왕실내에 나타나는 전형적인 족내혼의 모습이다.
언제 태어났는지는 알 수 없으며, 1244년(고종 31년) 2월, 태자비에 책봉되었다.[1] 남편인 원종은 희종의 첫째 딸인 안혜왕후의 아들로, 경창궁주와 원종은 서로 이종사촌간이 된다.
1260년(원종 1년) 왕비에 책봉되었다.
1277년(충렬왕 3년), 충렬왕 즉위 후 자신의 차남인 순안공을 위해 기도를 하였는데, 이것이 충렬왕을 저주하고 자신의 아들을 제국대장공주와 결혼시켜 왕위에 올리려 한다는 무고를 받아 폐서인이 되었다.[2]
가족 관계
- 조부 : 하원공(河源公) 왕춘(王瑃)
- 조모 : 미상
- 아버지 : 신안공(新安公) 왕전(王佺, ? ~ 1261)
- 외조부 : 희종(熙宗, 1181 ~ 1237)
- 외조모 : 성평왕후 임씨(成平王后 任氏, ? ~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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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편 : 원종 (元宗, 1219 ~ 1274)
- 아들 : 시양후 왕태(始陽侯 王珆, ? ~ 1266)
- 아들 : 순안공 왕종(順安公 王悰, 생몰년 미상)
- 딸 : 경안궁주 (慶安宮主, 생몰년 미상) - 제안공 왕숙과 혼인
- 딸 : 함녕궁주 (咸寧宮主, 생몰년 미상) - 광평공 왕혜와 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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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 《고려사》 권23, 세가 권제23, 고종 31년(1244년) 2월 6일 (정축)
태자비를 새로 맞다
신안공(新安公) 왕전(王佺)의 딸을 새로 태자비로 맞이하였는데, 전 태자비(정순왕후)가 죽었기 때문이다.
- ↑ 《고려사》 권28, 세가 권제28, 충렬왕 3년(1277년) 9월 16일 (임인)
원 황제의 지시에 따라 경창궁주를 폐위시키고 왕종을 유배보내다
조인규(趙仁規)와 인후(印侯)가 원(元)에서 돌아왔는데, 경창궁주(慶昌宮主)를 폐위시켜 서인(庶人)으로 삼고 왕종(王琮, 순안공)과 종동(終同)을 바닷섬으로 유배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