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리 뷰시는 텍사스주 구스 크릭 출신으로, 전업주부 새디 버지니아 (혼전성 어넷)와 건축 디자인 매니저 델머 로이드 뷰시의 아들이다.[4] 1962년 오클라호마주 툴사 소재 내이선 헤일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캔자스주 피츠버그의 피츠버그 주립 대학에 재적할 무렵 축구 장학금을 받았고, 연기에 대한 관심을 가진다.[5] 그 뒤 오클라호마주 스틸워터 소재 오클라호마 주립 대학으로 편입했으나, 졸업까지 한 학기를 남겨놓고 퇴학했다.
경력
초반
게리 뷰시는 더 러버 밴드(The Rubber Band)에서 드러머로서 사업 경력을 출발했다. 여러 리언 러셀 녹음에 참여했으며 "테디 잭 에디"[6] 또는 "스프렁크"라는 가명의 드럼 연주자로 기록되었다. 스프렁크는 KTUL 방송국에서 방영하는 툴사의 지역 텔레비전 쇼 《더 언캐니 필름 페스티벌 앤 캠프 미팅》에서 출연진으로 활동할 당시 그가 제작한 캐릭터다.[6] (여기서 동료 게일라드 사테인은 "닥터 마젭파 폼파조디"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언캐니 필름 페스티벌에 쓸 대본 작성을 위해 뷰시는 적대적이고 아는 채 하는 미국 히어로 캐릭터를 구상했다. 게일라드에게 그 캐릭터의 이름을 무엇으로 할지 묻자, 그는 "셋 중 하나를 골라. 테디, 잭, 그리고 에디."라고 답했다.[6] 카프(Carp)라는 밴드와 공연하기도 했으며 1969년 에픽 레코드에서 음반 하나를 발매했다.[7]
뷰시는 1970년 내내 지속적으로 영화 및 텔레비전에서 조역으로 출연했다. 1975년에는 《건스모크》에서 그가 연기한 "하비 데일리"가 시리즈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살해당하는 인물이 된다. (세 번째 시즌. 에피소드명 No. 633 – "The Busters".)
유명세 상승
1974년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제프 브리지스 주연 《대도적》에서 극중 마리클 키미노를 보조하는 친구 범죄자 역을 맡음으로서 메이저 영화에 데뷔한다. 1976년,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와 그 프로듀서 남자친구 존 피터스에 의해 기용되어 리메이크 영화 《스타 이즈 본》에서 크리스 크리스토퍼슨이 연기하는 등장인물의 로드 매니저 바비 리치를 연기했다. 영화 DVD 코멘터리에서 스트라이샌드는 뷰시가 훌륭한 일을 했으며, TV 시리즈에 출연한 그를 본 순간 그가 배역에 적임일 것을 예상했다고 말했다.
1968년 록계의 전설 버디 홀리 역을 맡아 《버디 홀리 스토리》에 출연했고, 사테인 또한 빅 보퍼 역으로 등장했다. 뷰시의 극중 연기는 그의 경력 사상 가장 극찬을 받았으며 그에게 아카데미상 최우수 남성 배우 부분 후보 지명 및 국립 영화 평론가 협회 최우수 남성 배우 부분 수상을 안겨준다. 동년, 미미한 호평을 받은 드라마 《출옥자》와 컬트적 인기를 지닌 고전 서핑 영화 《파도를 가르며》에 출연하다.
2003년 뷰시는 코미디 센트럴 리얼리티 쇼 《아임 위드 뷰시》에 기용되었다. 2005년 《심슨》 에피소드에서 목소리를 제공했으며,[10] 유명 미니시리즈 《인투 더 웨스트》에 출연했다. 2006년 터키 독립주의자 영화 《늑대들의 계곡 이라크》에서 논쟁적 출연을 감행했다. 영화는 파시즘, 반미주의,[11] 반유대주의[12] 혐의를 받고 있다. 2007년 HBO의 《안투라지》에서 주요 주연인물로 등장했다. 여기서 자신의 별난 이미지를 풍자했으며 궁극적으로 세 편에서만 모습을 비춘다. 2008년 리얼리티 쇼 《셀러브러티 리햅 위드 닥터 드루》의 시즌 2에서 합류했다.[13] 2011년 3월 초연한 《셀리브리티 어프렌티스 4》를 통해 리얼리티 텔레비전 쇼에 복귀했다.[14] 이후 《셀리브리티 어프렌티스 6》에 거듭 출연했고, 여기서 자신이 연기한 버디 홀리의 〈Not Fade Away〉를 잠시 공연한다.
2010년 유튜브의 비타민 워터 광고 시리즈에서 뷰시는 노먼 터그워터를 분한다. 이 캐릭터는 판타지 풋볼 팀 구단주로부터 방출된 전문 운동선수의 권리를 변호하는 변호사다.[15] 2014년 아마존 파이어 TV에서 연예 대변인으로 활동한다. 8월경 영국 버전의 《셀러브리티 빅 브라더》에서 첫 미국인 우승자가 된다. 2015년 9월 1일 《댄싱 위드 더 스타》의 21번째 시즌에서 경합을 벌일 것이라 공표했다. 전문 댄서 안나 브레번스카야와 팀을 구성했다.[16] 뷰시와 브레번스카야는 경쟁 4주까지 진출했으나 결국 10위 자리에 그쳤다.[17]
개인사
1971년 아내 주디 헬켄버그 사이의 첫 아들 윌리엄 제이콥 "제이크" 뷰시가 태어났다. 뷰시와 헬켄버그는 제이크가 19살일 무렵 이혼했다. 뷰시는 그 전 관계에서 출생한 알렉트라(Alectra)라는 이름의 딸이 한 명 있다.[18] 2010년 뷰시의 약혼녀 스테파니 샘프슨 사이에서 루크 샘프슨 뷰시가 출생했다.[19]
1988년 12월 4일경 뷰시는 헬멧 미착용 상태의 오토바이 사고로 여러 부상을 입었다. 두개골은 골절된 상태였고, 의사는 그가 영구적 두뇌 손상을 입었다고 진찰했다.[20] 《셀러브러티 리햅 위드 닥터 드루》 시즌 2 촬영중에 정신과 의사 찰스 소피는 뷰시의 두뇌 손상이 그가 인식하는 것보다 더 큰 영향을 주고 있다고 추측했다. 의사는 그의 정신적 "여과장치"의 손상이 언행을 충동적으로 변화시켰노라 묘사했다. 소피는 뷰시에게 벨프로산 복용을 권했고 뷰시는 이에 응했다.[21]
1996년 자신이 기독교인이라고 다음과 같이 공언했다. "나는 할리우드에게 내가 기독교인이라고 말하는 것이 자랑스럽다. 처음으로 내 자신에게 솔직해진 느낌이다."[22][23] 기독교로의 복귀는 오토바이 사고를 비롯해 1995년 코카인 중독에 의한 결과다.[24] 1997년 부비강 내에 발생한 자두 크기의 종양을 제거하는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뷰시가 코피를 흘림으로서 발견한 것인데 선천적으로 자라고 있었다.[25] 2011년, 도널드 트럼프 2012년 대통령 출마를 지지하는 발언을 했다. "미국인으로서, 선거일 밤 도널드 트럼프에 투표합시다."[26][27] 2015년 트럼프의 대통령 입후보를 지원하다는 견해를 내보였다.[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