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슈구마모토현에서 재일 한국인 2세로 태어나 폐품 수집상으로 일하던 부모 밑에서 자랐다. 재일 한국인으로서 일본 이름을 쓰고 일본 학교를 다니며 자기 정체성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던 중 1972년와세다 대학 재학중 '한국문화연구회'에 참가하고 한국을 방문한 것을 계기로 이제껏 써왔던 통명(通名)인 '나가노 데쓰오'(일본어: 永野 鉄男)라는 일본명을 버리고, 지금의 한국 본명을 쓰기 시작했다. 재일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사회 진출이 어려워 대학원에서 유예 기간을 갖던 중 은사의 권고로 독일 유학을 떠났다. 뉘른베르크 대학교에서 베버와 푸코, 사이드를 파고들며 정치학과 정치사상사를 전공했다.
재일 한국인 최초로 도쿄대학 정교수가 되었고, 도쿄 대학 대학원 정보학환 교수, 도쿄대학 현대한국연구센터장을 거쳐 세이가쿠인대학 총장을 역임했다. 일본의 근대화 과정과 전후 일본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으로 일본 사회에서 비판적 지식인으로 자리 잡았다.